[영화觀] 달리는 기분
  • 입력 : 2021. 01.08(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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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란시스 하'의 한 장면.

해가 바뀌는 깊은 밤, TV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한 해를 어우르는 쇼가 펼쳐진다. 무대의 가수들과 무대 앞의 관객들 그리고 집 안의 시청자들은 카운트다운을 함께하고 다시 또 맞이하는 일년에 대한 설렘의 감정을 같이 즐기고 나눠왔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기세가 조금도 시들지 않은 2020년의 연말연시의 풍경은 쓸쓸하고 괴상했다. 창 밖의 어둠에는 어떠한 사람의 소리도 섞이지 않는데 TV에서는 모두가 한데 입을 모아 그래도 힘을 내자고 우렁차게 소리 치고 있었다. 집 안 안전한 침대 위 이불 속에서 그 풍경을 보면서 나는 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채널을 돌리자 마스크를 낀 연기자가 울면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연기 대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청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들이 마스크 밖으로 건네어져 왔다. 갑자기 방송국의 사람들이 안쓰러워져서 또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TV 속 연예인들은 마치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한 국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시청자로 만들어 외출하는 것을 막으려고 파견된 특수 요원들처럼 보였다.

방송이 끝나고 다시 칠흑같은 고요가 찾아오자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자는 말들이 공허하게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날씨가 추워도 언제나 영차 하고 일어나 바깥을 향하던 마음들은 '이 시국에 어딜'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주저 앉혀지곤 한다. 날카로운 시선들과 염려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모두의 한결같은 모양새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TV를 켜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불과 재작년의 방송만 보더라도 다른 우주를 보는 것 같은 희한한 기분이 든다. 이런 시국에 가라앉고 주저앉는 마음에 고맙게도 용기를 훅하고 불어 넣어준 방송이 있었다. 엠넷의 리얼리티 예능 '달리는 사이'가 그것이다. 제목 그대로다. 여자 아이돌 다섯 명이 함께 달리기를 하는 사이가 되고 그들이 달리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마음의 바깥과 안의 풍경들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별 것 없는 담백한 설정 인데도 그들이 뛰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속마음을 맞추는 순간들에 용기를 얻었다. 함께 달리는 기분을 느껴서 인 것 같다.

그래서 달리는 기분을 전해주는 영화 '프란시스 하'를 다시 꺼내본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2014년 작품인 이 영화는 지난 해 개봉된 '작은 아씨들'의 훌륭한 리메이크로 찬사를 받은 감독 겸 배우 그레타 거윅이 주인공 프란시스를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원하는 무엇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십 대의 여주인공 프란시스는 낙담과 농담 사이를 씩씩하게 달려나가는 청춘이다. 흑백의 화면에 담긴 프란시스의 뉴욕은 이 청춘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공간은 아니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다 그렇겠지만 경쟁은 치열하고 살 곳은 마땅치 않은데다 단짝은 영원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시스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달린다.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곁에 누가 있지 않더라도 달릴 수 있다는 프란시스의 마음 그리고 달리는 순간의 충만함이 보는 이의 마음에도 상쾌한 박동을 일으킨다.

언젠가는 분명 어깨동무와 포옹, 악수와 하이 파이브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딪히는 순간들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눈 앞의 서로를 향해 힘껏 달리는 그 기분을 만끽할 순간이 틀림없이 도착할 것이라고, 우리는 지금 그 기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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