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0)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0)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사람과 환경이 가장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는 초록 마을
  • 입력 : 2015. 10.13(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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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메기오름 중턱에서 바라본 동백동산 람사르습지와 선흘리 주거지역(위). 마을회관 옥상에서 본 마을 전경(아래).

약 750년전 설촌… 높은 산의 기상으로 뻗어나가는 곳
동백동산 람사르습지로 등록… 생태계 보물창고 명성
4·3 당시 마을 불타고 주민들 학살 당하는 아픔 겪어
지역사회 "조용한 농촌 모습 간직하며 장수마을 꿈꿔"

알바메기 오름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방대한 동백동산 일대 초록 숲에 사람들이 아주 조금 끼어들어와 살고 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아니다. 가졌다는 것은 사람 중심. 함께 살아간다. 원앙, 왜가리, 검은댕기해오라기, 열대붉은해오라기, 캭도요, 큰오색딱다구리, 직바구리, 오랑지빠귀와 같은 수십 종의 새와 제주도롱뇽과 북방산개구리 같은 생태계 시금석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습지를 보유한 숲이기 때문에 먹이사슬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되는 곳. 이 파괴되지 않은 자연을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 동백동산이 람사르습지로 등록되고, 2013년 세계 최초로 람사르마을로 선흘1리가 지정된 것은 동백동산 습지(지방기념물 제10호)라고 하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인증을 받은 것. 동백동산을 빼면 선흘1리를 이해하기 곤란하다. 한마디로 곶자왈이다. 크고 작은 용암덩어리와 나무,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가치는 선흘1리 주민들의 무한자산이다. 북방계식물과 남방계식물이 공존하고, 난대상록활엽수 천연림이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4·3당시 주민들이 성담을 쌓고 살던 형태를 복원한 역사교육현장.

고일랑(76) 노인회장을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이 설명하는 설촌의 역사는 대부분 구전에 의한 것이지만 다양한 사료를 종합하여 입증 된 것이다. 선흘은 약 750년 전에 설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기 1250년 쯤 현씨에 의하여 설촌되었다는 근거로 상율악 분지 안에 보면 사시사철 흐르는 샘물이 있는데 현씨가 설촌 당시에 사용되었다고 하여 현샘이라고 칭하였으나 지금은 구개음화 되어 '선샘'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낙선동 일대와 지역 곳곳에 고려시대 기와조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설촌 연대를 짐작하게 한다. 지금의 선흘(善屹)은 '玄'이 구개음화에 의하여 '先'이라 부르다가 1900년 쯤에 남단 이태선 선생이 뜻을 '착하고 높은 산의 기상으로 굳게 뻗어나가자'는 의미로 개자(改字)하여 사용하고 있다. 18세기 중반부터 웃선흘과 알선흘로 나누어 부른 기록들이 있다. 선흘1리는 알선흘 지역. 마을 구성은 본동과 낙선동, 신선동, 목선동 네 개의 자연마을이 합쳐져서 이뤄진다.

박현수 이장

특히 이곳은 4·3의 아픔이 큰 마을이다. 1948년 11월21일 마을이 모두 소개되고, 가을 곡식과 마소를 두고 바닷가 마을로 내려 갈 수 없었던 주민들은 '조금 지나면 이 난리가 끝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목시굴과 도틀굴에 숨어서 지냈다. 불타버린 마을 주변을 수색하던 군경 토벌대에 의해 발각되어 약 1주일 사이에 100여 명 가까이 학살당했다. 선흘1리에는 당시 여러 동네가 있었다. 새동네, 큰굴왓, 실물가름, 봉냉이동산, 돗바령, 동카름 등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대부분 학살당한 결과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이 없어서 본동을 중심으로 겨우 재건 된 것이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강제노역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서 그 비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4·3역사교육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낙선동성이다. 당시 내부에서 생활하던 초가집과 망루들을 복원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생활상을 보여줄 프로그램 마련에 행정 당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박현수(60) 이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저 성터를 탐방객들이 많이 관람하고, 그 당시를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행정 당국에 지속적인 지원요청을 하고 있지만 역사의식과 관련된 예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람사르습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동백동산내 먼물깍.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학생수 200명이 넘는 초등학교를 두고 300여 호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분교가 된 초등학교가 있다. 많이 떠났다는 이야기다. 외부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인구가 늘었다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으면 하는 희망은 여느 농촌마을과 같고. 부인식(70) 낙선동노인회장의 지적은 가슴 아프다. "마을 안길이 협소하여 차량 통행이 답답하니 정주여건 개선 없이는 마을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참으로 독특한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마을 발전이라는 것이 도시화 되는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한상택(42) 청년회장이 꿈꾸는 30년 뒤 선흘1리의 모습은 "인구가 30년 전의 규모를 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연과 함께 부족함 없이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마을이 진정 행복한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관광객과 탐방객이 많이 오는 마을로 변모하더라도 도시처럼 상업화 된 마을이 아니라 조용한 농촌의 모습을 잃지 않은 발전 모델이 될 것입니다." 김장택(62) 개발위원장이 밝히는 선흘1리의 미래는 "자연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들로 마을공동체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제주 최고의 장수마을로 자리매김 되는 것입니다. 100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이 목표입니다."

마을의 주산인 알바메기오름.

식물생태자원만 해도 도지정 기념물로 지정된 만리향과 변산일엽 등 엄청난 생물다양성을 보유한 선흘1리가 이러한 강점을 경쟁력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에 놓여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에서 세계무대에 '람사르마을이라는 지역도 있다'며 제주의 자연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위상(?)에 걸맞은 프로그램과 주민들의 자긍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특별한 예산 마련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답이 돌아오고 있는지 선흘1리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보전 의지와 의식이 주민공감대로 뿌리내린 선흘1리 람사르마을은 전 세계에 '사람과 환경이 가장 아름답게 공존하는 마을'로 알려져야 한다. 행정시 밑에 읍, 읍 밑에 1개의 '리'로 판단해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이기에 행정의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 주민 자발성은 이미 검증되었기에.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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