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5)대정읍 인성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5)대정읍 인성리
  • 입력 : 2014. 11.11(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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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한라산에서 산방산과 단산까지 펼쳐진 모습(위). 단산에서 바라본 인성리 전경(아래).

단산 아래 어진(仁) 이들이 사는 곳
옹기종기 이웃과 마늘도 심고
3의사의 항거에 넋을 기르며
'탈탈탈'경운기 소리가 정겨운 곳
'제주 항거의 주역' 3의사가 잠든 역사마을
친환경 녹색마을 조성에 마을주민 공감대



조선 선조 때, 대정현성을 쌓았다. 하나의 고을이 탄생한 것이다. 대정고을. 그 내부 구분을 동성과 서성으로 부르다가 1864년 고종 1년에 동성리가 인성리와 안성리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대정성을 근거지로 하여 뻗어나간 마을 셋이 모두 성(城)자 돌림인 곳. 인성리, 보성리, 안성리. 크게 보면 한 마을 같아서 이 곳 사람이 아니면 마을 구분이 쉽지 않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마을 이름이 달라지니 말이다. 그 중에서 인성리를 찾은 것은 단산과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가장 한반도 평야지대를 닮은 곳이 있다면 이 곳이라 하겠다. 농토는 평지이고 거기에 우뚝 솟은 단산이 있어 야릇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단산은 소쿠리 단(簞)이다. 어찌 알았을까? 원래 바다였던 곳에서 폭발한 수성화산이나 응회구의 퇴적층이 수 십 만년에 걸쳐 침식을 거듭한 결과 분화구의 일부만 남게 되었다는 것을. 분화구는 소쿠리를 빼닮았으니. 산세를 굵게 바라보는 제주 선인들의 시각이 참으로 놀랍다. 단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응회암은 독특한 경이로움을 제공한다. 단산의 지경은 마을 두 곳의 경계다. 남쪽은 사계리. 북쪽은 인성리라고 하니 안덕면과 대정읍이 단산에서도 나눠지고 있는 것. 인성리 주민들의 단산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정두진 인성리장은 여건만 마련된다면 관광객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경로를 개발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단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마을 임원 중 한 분은 단산 정상에서 산방산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상상력의 범주이기는 하지만 농업소득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왔으리라.

앞으로 마을공동체가 펼칠 사업을 묻는 과정에서 3의사비가 등장하였다. 이재수의 난으로 기억되는 역사의 무대가 대정고을이기 때문. 강우백, 오대현, 이재수 3인의 장두를 한양으로 압송 처형하였지만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의로운 항거의 주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비석의 비문이 낡고 어려운 한문이 많아 이를 대신하여 새롭게 비석을 세우면서 원래 비석은 그 옆에 묻어두었다고 한다.

내년에 비석을 꺼내 세우는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문화재적 가치로 세상에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3의사비 옆면에 '대정고을 연합청년회 건립'이라는 글귀가 이 곳 젊은이들이 어떤 의식으로 이재수의 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진 사람들이 살아서 仁城里다. 이경진 마을회 감사의 생각은 이렇다. 보성리, 안성리 사람들과 대정고을과 관련한 공동관심사에 대하여 치열한 논의 과정에서 주장은 주장대로 하지만 결국 양보의 미덕을 보이는 것은 주로 인성리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정향교로 상징되는 유교적 겸손의 터전으로 자리매김 하고 싶은 자세가 기름진 농토처럼 펼쳐진 마을. 그래도 강태생 부리장의 강단 있는 지적은 대정 유림의 정신이 녹아 있었다. 대정향교에 있었던 추사선생이 직적 쓴 疑問堂이라는 편액이 왜 그 곳에서 추사관으로 이동했느냐는 것이다. 고지식한 주장일지 모르나 진위를 분명히 하자는 모습은 대정향교 방문객에게 영인본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일 것이다.

정두진 인성리장

243가구 53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유동인구가 적은 농촌마을이지만 미래에 대한 설계는 지극히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었다. 주로 감자, 콩, 감귤 등을 재배하고 있으나 특성화 작물이 없어서 특화소득원 개발을 통해 새로운 소득기반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농업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마을 공동의 수익사업이나 대안산업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냥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 품질 좋은 복지 공간으로써의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것이었다. 이구동성으로 요양과 의료시설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는 것은 제주 농촌마을의 현실을 심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

마을 안길을 걸어보면 정갈함을 느끼게 된다. 소박하면서도 품격을 지키려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리라. 그래서일까 환경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았다. 당면과제로 공감대를 이룬 것이 친환경 녹색마을 조성 사업이다. 작은 규모에서부터 시작하여 태양광 발전 시설을 마을공동체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신재생에너지 생산이 인성리 미래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는 것이다. 수익모델로 정착이 된다면 농사용 폐비닐 재생사업에 마을공동체가 나서겠다고 했다. 폐비닐 야적장에 쌓여있는 것들을 스스로 재생산하여 쓰겠다는 의지에 행정적 지원이 뒤따른다면 성과가 클 것이다. 농촌 마을에서부터 친환경 의식이 성장한다는 것은 다른 산업과의 연계에도 필수적인 요소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나가자는 주민들의 합의가 확고해보였다. 농업환경이 가지는 경관적 가치에 이미 눈떠있는 마을이다.

다시 단산에 올라 인성리를 바라본다. 도드라진 건물이나, 눈에 뜨이는 시설이 없다. 한마디로 자연스런 조화. 농가들이 옹기종기 이웃하여 정을 나누는 모습에서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행복하겠다'는 부러움이 일어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단산보다 큰 관광자원은 단산에 올라 인성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도시인들에게 던져줄 메시지가 있는 마을 풍경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정미.

인성리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안타까움을 듣게 된다. 추사기념관과 대정향교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면 단순 방문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자원과 연계된 주민소득 사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 유교적 전통이 강한 마을에서 차분하게 인성수련을 쌓으러 오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맞이할 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민의식 수준을 행정이 뒤따라가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면 이런 것은 아닐까.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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