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방한숙 방림원 원장

[제주愛 빠지다]방한숙 방림원 원장
'야생초와의 사랑’에 빠져 제주에 둥지
  • 입력 : 2013. 03.08(금) 00:00
  •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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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사랑에 빠져 제주에 둥지를 튼 방한숙 원장이 방림원에서 손수 야생화를 가꾸고 있다. 강경민기자

1만6500㎡ 규모에 3천종 전시
20년동안 세계 여행하며 수집
"손색없는 야생화 명소 만들것"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방림원은 국내 유일의 야생초 박물관이다.

지난 2005년 개원한 이곳은 1만6500㎡(5000여평) 규모로 방한숙 원장이 우리나라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을 20년동안 여행하면서 수집한 야생초 3000여종이 전시돼 있다. 또 난과 식물과 세계 각국의 고사리류들과 식충식물, 백두산 고산식물, 한국 자생식물 90종과 귀화식물 10종이 있다. 제주의 보존자원인 붉은 송이돌로 만든 방림굴, 유리온실도 있다.

이곳은 지난 2002년 제주에 정착한 방 원장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방 원장은 나이가 들어서 남편과 함께 전원에서 살 곳을 찾다가 이곳을 찾았다. 제주에 정착한 후 방림원 컨테이너 건물속에서 혼자 생활을 하면서 주야로 석부작과 분재를 만들기 시작했고 손수 조경을 하고 야생화를 심었다.

방 원장이 분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남편과의 일본 출장이었다.

"지난 1980년대초 한전에 다니던 남편 출장을 따라 일본을 갔는데 마치 그곳에서 열린 철쭉 전시회에 가게 됐습니다. 5가지의 꽃이 한꺼번에 핀 분재가 너무 아름다워 한국에 오자마자 분재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야생화와 고사리 등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방 원장은 방림원을 만들면서 그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수집한 야생초와 작업한 분재 등을 제주로 옮겼다. 분재를 제주로 옮기는데 컨테이너가 12번이나 왔다갔다. 그동안 해외에서 사모은 야생초 등이 50억원 규모이다.

이곳에는 개구리 인형이 많다. 방림원의 상징이기도 한 개구리는 그래서 방림원 곳곳에 다양한 장식물로 설치돼 있다.

박 원장은 초창기 작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서 울기도 했다. 그래서 박 원장은 해외에 나가면 개구리 인형을 사오곤 한다.

방 원장이 방림원을 8년동안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 임도수 보성파워텍 대표이사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성파워텍은 지난 1970년 설립된 전력기자재 업체로 1994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방림원의 이름도 방 원장의 성씨인 방과 임 대표의 성씨인 임자에 동산 원자를 넣어 지어졌다.

방 원장은 "제주도에 내려온 후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준 남편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는 한국양치식물연구회장을 역임한 김정근 김영란 서울대 명예교수 부부와 함께 꽃보다 아름다운 고사리라는 고사리 도감을 펴냈다. 또 지난해 칠순을 기념해 자서전을 펴냈다. 자서전 제목은 '여보,밥먹었어!'. 자서전에는 방 원장의 인생이야기와 지금의 방림원을 설립하기까지의 방 원장의 야생화사랑 30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방 원장은 항상 남루한 작업복 차림을 하고 있다. "계절별로 모습을 달리하는 야생화는 우리네 인생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야생화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지만 문화공간이자 예술공간으로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방 원장의 꿈을 향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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